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(문단 편집) ==== 강남지구 ==== 북한군은 이날 10시 남산에 배치된 [[포병]]의 호위를 받으면서 청담리로의 도하를 다시 시도했다. 반포리 뒷산에 진지를 판 선견대는 적의 기마대대의 서쪽 진지를 공격 하였다. 엄청난 포격에 말들은 늘라 우왕자왕했고 결국 제 2기마수색대대는 [[과천]]의 2사단 사령부로 후퇴하였다. 당시 제2기마수색대대 3중대장 박익균 중대장은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. ||"전투가 벌어지자, 적이 언제 숨어들었는지 기관총으로 우리의 좌측방을 위협하는 가운데, 배들이 강을 건너 남안으로 올라붙었는데, 적의 치열한 포들에 말이 먼저 놀라 (이때까지 병사의 승마 훈련만 끝났을 뿐, 말 자체는 전투소음에 대한 음향훈련이 되어있지 않아, 포성과 포탄의 파편에 동요되었던 것으로)고삐를 풀고 달아나고 말았다. 말을 붙잡으랴, 적을 막아내랴,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도무지 싸움이 되지 않았다. 전투가 그 모양으로 얼켜들자 김포지구에 출동하였다가 돌아 온 최영화 소위는 분기가 치솟아 홀로 적중으로 돌격을 감행하여 장렬히 전사하는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. 그때에 달아난 말들이 귀소본능에 따라 한강을 헤엄쳐서 한남동으로 가는 데에는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말이 적진으로 향하였으나 차마 총으로 쏘아 죽이지는 못하였다. 나중에 들으니 내 말이 당시 한남동의 연대본부 근처에 있던 내 집으로 찾아가, 미처 피난하지 못한 집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."|| 12:00 기마대대의 후퇴를 본 3연대장 최수창 중령은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하여 1대대를 선두로 반하여 1개 중대규모의 적 선견대를 격멸하고 적을 모래사장으로 쫓아내고 강을 막 건넌 75mm포 5문과 장갑차를 파괴하였다. 그러나 적의 포화와 계속된 증원으로 결국 3연대는 과천으로 후퇴하고 제 5연대가 말죽거리~우면산 일대에 진지를 설치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